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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실에 관한 재미난 이야기들


영국 왕이 참전한 가장 최근 전투는 1743년 7월 27일 조지 2세가 참전한 오스트리아 왕위계승권 전쟁 중의 데팅겐 전투였습니다.


전쟁에서 전사한 마지막 왕은 1485년 8월 22일 Battle of Bosworth,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장미전쟁때 튜더가문의 헨리에게 패하고 죽음을 맞이한 리차드 3세왕입니다.

요크 가문과 랭커스 가문의 이 전쟁을 끝으로 헨리 7세가 튜더왕조시대를 열게 됩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4세는 헨리 8세가 프랑스에 있는 틈을 타 잉글랜드 침공을 감행하였다가 1513년 9월 9일 플로든필드 전투에서 전사하였습니다.


현재의 영국 왕실은 과거 잉글랜드 왕실과 혈연적인 관계가 있을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140년 전인 871년부터 899년까지 영국을 통치한 알프레드 대왕의 32세손입니다.


미국은 1776년에 독립했는데 영국측 일부에서는 1783년으로 간주하는 이유는?  




13개의 식민주가 독립 선언을 한 시기는 1776년이 맞습니다.

하지만 영국과의 독립 전쟁은 1783년 파리 조약때까지 계속 되었기에 실질적인 미국의 독립이 쟁취된 것은 1783년입니다. 


찰스왕세자는 이혼녀와 결혼하고도 왕위계승권을 그대로 유지하는데 왜 에드워드 8세(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큰 아버지)는 퇴위했어야 했나요?



에드워드 8세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큰 아버지로 월리스 심슨이라는 미국인 이혼녀와 결혼을 하기 위해서 동생인 조지 6세(엘리자베스의 아버지)에게 양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혼을 하거나 이혼 경력이 있는 배우자와 결혼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왕위계승이 박탈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에드워드 8세의 경우에는 그의 배우자가 이혼녀 이기도 했지만 재혼한 상태의 유부녀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다시 에드워드 8세와의 결혼을 위해 이혼 소송을 진행하던 중이었습니다.


당연히 부왕이었던 조지 5세와 메리 여왕 부부도 극렬히 반대했었죠.

볼드윈 수상을 비롯한 의회와 영국내의 여론도 그러했고 심지어는 영연방 국가들의 반대도 매우 심해지자 결국 에드워드는 양위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법적인 근거도 있습니다.

Royal Marriages Act 1772 조항에 따르면 왕실 구성원이 결혼을 할때는 주권자의 동의를 구하도록 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찰스왕세자와 카밀라의 결혼을 허락하였고 최근에는 윌리엄 왕자와 캐서린 미들턴의 결혼을 허락하기도 했습니다.


많이들 알고 계시듯 찰스왕세자와 결혼한 카밀라도 이혼녀이긴 합니다만 에드워드 8세와 다른 점은 왕(여왕)의 허락이 있었느냐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왕의 결정도 일방적이라기 보다는 여론을 잘 수렴하여 내리는 결정이므로 이혼녀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더 부정적이었던 당시(1930년대)에는 당사자를 제외한 거의 모두의 반대가 당연시 되었던 분위기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역사에 가정을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지만

에드워드 8세가 퇴위하지 않았다면 현재 왕위는 누가 계승하였을까요?


에드워드 8세는 재위 기간을 1년도 채우지 못한채 1936년에 동생 조지 6세에게 양위하였습니다.

에드워드는 자녀없이 1972년에 사망하였고 동생 조지 6세는 1952년 사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에드워드 8세가 양위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후사를 이을 자녀가 없었으므로 동생에게 왕위가 넘어갔을 것이고 동생이 먼저 죽었기에 결국 동생의 자녀인 엘리자베스가 왕위를 이어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경우 엘리자베스의 즉위 시기가 1952년이 아니라 20년 후인 1972년이 되었겠지요.^^


故다이애나비도 여왕(Queen)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 말로 하면 왕King과 여왕 Queen은 통치자이지만 영어로는 통치자인 왕King의 부인도 Queen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자베스 여왕도 Queen Elizabeth죠.

이 때 Queen은 왕비가 아니라 여왕입니다.


다이애나비의 경우 만약에 아직 생존해 있었고 찰스왕세자와 결혼생활을 지속중인 상태였다면 찰스왕세자가 왕King이 되면 다이애나도 Queen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이혼도 했고 이듬해에 사망까지 했으니 그냥 영원히 다이애나비입니다.


참고로 다이애나비라고 하는 것도 우리말로는 왕비 비妃를 사용하여 호칭하지만 영어로는 공주princess입니다.

왕이나 여왕의 딸 뿐만아니라 왕자prince의 아내까지 princess라고 부르는 것이죠.

즉, 영어로는 여왕과 왕비가 모두 Queen이고 공주와 왕자의 아내까지 모두 princess입니다.


또 한 가지, 엘리자베스 여왕의 남편 필립도 prince입니다.

왕의 아내를 Queen이라고 하는데 반해 여왕의 남편은 King이 아니라 그냥 prince랍니다.


왕의 이름에 웨일스가 들어가는 이유는 뭘까요?

우리말로 "전하"라고 하죠.

여기에 해당하는 표현이 His (or Her) Royal Highness입니다.

줄여서 HRH라고 합니다.



현재 영국 왕실은 윈저 가문입니다.

그런데 윌리엄 왕자의 공식 호칭은 HRH Prince William of Wales이고 헨리 왕자는 HRH Prince Henry of Wales입니다.


여기서 윈저Windsor가 아니라 웨일스Wales라고 하는 이유는 13세기 에드워드 1세가 웨일스와의 전쟁 중 아들인 에드워드 2세가 태어났기에 웨일스의 왕자Prince of Wales라는 호칭을 쓰게 됩니다. 


이후부터 왕자들의 호칭에 웨일스가 포함되게 되는데요, 이는 웨일스 지방의 민심을 잡기 위한 통치 전략이기도 합니다.


찰스왕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조지 7세가 될까요?

찰스왕세자의 할아버지는 조지 6세입니다.

그러면 찰스왕세자가 왕이되면 조지 7세가 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만...

그러나 할아버지의 왕호를 따르든 다른 선택을 하든 전적으로 찰스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남편인 필립공은 결혼 전엔 어떤 관계였을까요?

엘리자베스 여왕과 남편 필립은 모두 빅토리아 여왕의 후손입니다.

여왕은 빅토리아 여왕의 장남 에드워드 7세의 직계 후손이며, 에딘버러 공작 필립공은 빅토리아 여왕의 딸 프린세스 앨리스의 직계 후손입니다. 



웨일스는 에드워드 1세에 의해 영국에 합병되었고 이후 그의 장남을 프린스 오브 웨일스(Prince of Wales)라고 호칭하였습니다.

이로써 웨일스는 영국의 일부가 되었으며 이후부터 영국 왕실의 왕자들은 웨일스의 왕자라는 호칭을 갖게 됩니다.


스코틀랜드는 1603년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왕이 됨으로써 양국의 왕가는 통합되었습니다.

제임스 1세는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의 아들이자 당시 대가 끊긴 잉글랜드 튜더스 왕가의 계승자였습니다.

결국 양국 모두의 왕위를 계승한 제임스6세는 잉글랜드 왕국에서는 제임스 1세가 되면서 스튜어트 왕가 시대를 개창하게 됩니다.


아일랜드는 언제부터 영국의 일부가 되었을까요?

(남)아일랜드와 달리 북아일랜드만 영국의 영토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일랜드는 1800년 영국과 아일랜드 의회가 각각 합병에 관한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양국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일랜드는 1921년 독립을 하게 되는데 북아일랜드는 주로 프로테스탄트 즉 개신교도이고 남부 아일랜드는 카톨릭입니다.


이러한 종교적인 이질성으로 6개의 카운티는 계속해서 영국의 일부인 북아일랜드로 남게 되고 나머지 26개 카운티만 독립하여 아일랜드 공화국을 탄생시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국의 국기인 유니언 잭은 이러한 왕국의 변천에 따라 변화되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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