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환 영구결번 그 영광과 황당함의 사이
스포츠 구단에서는 뛰어난 업적과 훌륭한 활약을 보인 선수를 기리기 위해 해당 선수가 현역시절 달았던 등번호를 영구결번(Retired Number)으로 지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메이저리그MLB 구단 중 영구결번의 시초인 뉴욕 양키스의 경우는 1빌리만킴, 2데릭지터, 3베이브루스, 4루게릭, 5조디마지오, 6조토리, 7미키맨틀, 8요기베라, 9로저메리스, 10필리주토 등 1~10까지의 모든 번호가 영구결번이 되기도 했습니다.
또 특정 구단 뿐만아니라 해당 프로리그 전 구단에 걸쳐 영구결번 처리된 독특한 사례도 있는데 미국 프로야구 최초의 흑인 선수인 재키로빈슨(브루클린 다저스)을 기리기 위해 MLB 전 구단이 42번을 영구결번 처리하는데 동참하였습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KBO리그에서 1986년 OB소속이던 김영신 선수의 54번을 영구결번 처리한 것이 최초입니다.
불행히도 그는 1986년 한강 하류에서 익사채로 발견되었는데 사인으로는 성적 비관에 의한 자살로 결론지어졌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살펴보면 현역시절의 탁월한 성적은 영구결번의 충분조건일 수는 있지만 필요조건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선수의 사망사례에 따라 해당 등번호를 영구결번 처리하는 사례는 외국에도 많습니다.
이탈리아 축구국가대표 수비수 다비데 아스트리는 2008년~2016년 칼리아리 칼초에서 174경기에 출전했으며 이듬해 피오렌티나로 이적하였는데 구단과의 재계약을 앞두고 있다가 호텔에서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에 아스트리가 몸 담았었던 칼리아리와 피오렌티나 두 구단은 그가 현역시절 달았던 등번호 13번을 영구결번하였습니다.
하지만 뛰어난 성적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김영신 선수 이후의 영구결번자 명단을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최다안타 양준혁, 한국시리즈 4승 최동원, 0점대 방어율 선동열, 22연승의 박철순 등을 보면 엄청난 업적을 남긴 선수들에게 구단이 보여줄 수 있는 존중의 표시가 영구결번 아닌가 싶네요.
이에 반해 우리나라 축구 K리그에서는 영구결번 사례가 드뭅니다.
프로축구는 프로야구보다 단 1년 늦은 1983년에 출범하였는데 현재까지 영구결번의 사례는 김주성의 16번(전 대우로얄즈-현 부산아이파크), 윤성효 38번(수원), 최은성 21번(대전) 등 3차례 밖에 없습니다.
그 중에서도 최초 프로축구 최초 영구결번 김주성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김주성은 1989년부터 1991년까지 3년 연속 아시아 올해의 축구선수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리고 김주성 이후 지금까지도 3회 연속 수상자는 없습니다.
김주성의 활약으로 우리나라는 1986년 아시안게임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이후 다시 아시안게임 우승(2014년)까지는 28년이 더 걸렸습니다.
1987년 대우로얄즈에 입단하여 28경기 10골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과 신인상을 거머쥐었고, 1991년 두 번째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1992년부터 독일 분데스리가로 진출하여 그해 소속팀(보쿰)은 2부리그로 강등되었고 이듬해엔(93년) 팀을 다시 1부리그로 승격시키는데 기여했지만 중용되지 못하자 1994년 국내로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1995년부터는 전차군단 독일의 마테우스처럼 수비수로 보직을 바꾸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1997년 K리그 통산 3번째 우승과 MVP를 수상하였습니다.
1999년 11월 25일 은퇴경기를 끝으로 김주성은 그라운드를 떠나게 되고 구단은 그의 등번호 16번을 영구결번 처리 합니다.
이것이 대한민국 프로축구 K리그의 최초의 영구결번 사례입니다.
긴 머리를 찰랑거리며 축구계에 장발 유행을 선도했던 김주성은 그라운드의 야생마, 삼손 등의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그의 은퇴 후 장발은 같은 프로팀 소속의 안정환이 테리우스라는 별명으로 계승(?)하였고 그라운드의 야생마라는 별명은 프로야구 LG의 이상훈에게 주로 붙여 졌습니다.
이제는 그의 이름마저도 그 보다 10년 늦게 세상에 나온 프로농구의 김주성에게 묻힐 지경이니 프로축구 유일무이의 영구결번 선수가 이렇게까지 잊히고 있는 게 참으로 안타깝네요.
사실 김주성의 은퇴 이후에도 프로축구는 상당히 발전하였지만 그의 말년 무렵 들이닥친 IMF는 당시 최고의 명문구단이던 대우로얄즈 시대를 끝내 버렸고 이어진 부산 아이콘스는 멍청하고 즉흥적인 구단 운영을 일삼다가 현재는 팀이(부산아이파크) 2부리그까지 강등되었습니다.
부산아이콘스가 얼마나 멍청했냐면 2001년에 입단한 송종국이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에 기여했다며 그의 백넘버 24번을 영구결번 결정을 하게 되는데요.
불과 2시즌도 뛰지 않았던 선수에게 그것도 해외진출을 앞둔 20대 초반의 선수에게 영구결번을 한다는 졸속 결정을 내린 것이지요.
아마 송종국 본인도 당황스러웠을 겁니다.
그렇게 영구결번으로 영원히 기리자던 선수가 네덜란드 페예노르트로 떠난 후 3년만인 2005년엔 수원구단으로 복귀해 버렸으니까요. ㅎㅎ
어쩌면 부산아이콘스는 송종국의 국내 복귀를 예상하고 미리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처럼 송종국에게 영구결번이라는 족쇄를 채워 아이콘스로의 유턴을 유도하려 했던 거라면 아이콘스를 과대평가 하는 것일까요?
어쨌든 송종국의 영구결번 헤프닝은 이렇게 유야무야 흐지부지 하게 되어 김주성의 영구결번만을 지금까지 구단의(대우로얄즈-부산아이콘스-부산아이파크) 유일무이한 사례로 남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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