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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차기 대통령 선거가 12월이 아닌 5월 9일에 치르게 되었는데요. 우리 국민들의 관심은 온통 눈 앞에 바짝 다가온 장미대선에 선거에 쏠려 있을 겁니다.


작년부터 브렉시트와 미국 대선 등 굵직한 사안에 대한 여론조사와 실제 결과가 다른 현상이 나타나기도 해서 우리나라의 대선 결과도 끝날 때까지 큰 관심을 이끌 것으로 보이는데요.


오늘은 우리와는 대통령 선출 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역대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 중에 엄청난 접전을 일으켰던 사례들을 살펴 보겠습니다.


1. 듀이를 물리치다 - 트루먼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진 중 하나로 재선에 성공한 트루먼 대통령이 듀이에게 패하여 낙선되었다는 헤드라인이 쓰인 신문을 들어 보이고 있습니다.


1948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워싱턴 스타 신문의 헤드라인은 해리 트루먼의 재선 가능성을 거의 희박하다고 예측하였으며 경쟁자인 토마스 듀이가 여유롭게 웃으며 해보나 마나 한 선거라며 승리를 확신하는 카툰까지 발행하였습니다.

아무도 트루먼이 재선에 성공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트루먼은 22,000마일에 이르는 전국 유세활동을 다니며 자신의 재임을 지지해 줄 것을 치열하게 홍보하였습니다.


그 결과 공화당의 듀이 후보를 물리치고 위 사진과 같이 시카고트리뷴지의 헤드라인을 유명한 오보로 만들어 버리는 엄청난 대역전 드라마를 이루어 냈습니다. 


2. 거함을 격침 시키다 - 일리노이의 햇병아리 오바마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2016년 대선은 힐러리 클린턴의 두 번째 패배였습니다.

그녀의 첫 번째 패배는 2008년 당내 경선에서 맞닥뜨린 일리노이주 출신의 젊은 상원의원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뉴욕 출신의 상원의원이자 전직 대통령의 부인으로 민주당 내에서도 그 입지가 상당히 컸던 힐러리 클린턴에게 첫 패배를 안긴 사람은 힐러리에 비해 별로 유명하지도 않던 버락 오바마였습니다. 

당내 경선에서 거함 힐러리를 꺾은 오바마는 본선에서도 "변화"와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슬로건으로 공화당의 존 매케인을 꺾고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3. 플로리다의 신승 - 조지 W 부시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조지 W 부시는 상대인 민주당 앨고어후보에게 득표수로는 50만표 가량 졌지만 확보만 선거인단의 수에서 앞서 간신히 당선되었습니다.

각 주의 국민투표 결과 한 표라도 이긴 후보가 그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 수의 전체를 독식하는 미국의 독특한 대통령 선거방식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는데요,(일부 주는 제외)

특히 플로리다에서는 애초에 고어 후보의 승리가 예상되다가 537표 차이로 조지 W부시가 승리함으로써 이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 25인의 표가 부시에게 더해짐으로써 최종 승부가 결정났습니다.

워낙 근소한 표 차이였기에 재검표 논란도 있었지만 결과를 뒤집지는 못했습니다.


4. "더러운 흥정"(Corrupt Bargain) - 존 퀸시 아담스



1824년 선거에서는 존 아담스 2대 대통령의 아들인 존 퀸시 아담스를 포함하여 4명의 후보가 등장하였지만 잭슨 99표, 아담스 84표, 크로포드 41표, 클레이 47표로 누구도 과반수를 획득하지 못 하여 하원의 결정으로 대통령을 선출하게 되었습니다.


하원에서는 다득표 순으로 3인으로 후보를 좁혔는데 애초에 4위였던 클레이가 아담스에 대한 지지를 표명함으로써 아담스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선거인단 과반수 획득자가 없으면 하원에서 최종 3인 중 선출하도록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6대 대통령이 된 아담스는 클레이를 국무장관으로 임명하였고 이로 인해 "더러운 흥정"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편 선거인단 확보는 1위였지만 "더러운 흥정"으로 분루를 삼킨 앤드류 잭슨은 4년 후 아담스의 재선을 막으면 7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5. 다크호스의 원조 - 제임스 포크 



1844년 민주당의 유력 후보로는 마틴 밴 뷰런이었습니다. 그러나 멕시코로부터 독립한 텍사스 주의 연방 편입에 대한 반대 의사를 가진 마틴 밴 뷰런은 볼티모어에서 열린 후보 지명대회에서 선택 받지 못 하게 됩니다.

결국 민주당은 전 하원 의장이던  제임스 포크를 후보로 지명하게 되는데 애초에 부통령으로 유력하던 제임스 포크는 전체 유권자 득표에서 4만여표의 근소한 차이로 헨리 클레이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역사학자 테드 와이드너는 이를 두고 제임스 포크를 다크호스의 원조라 부르게 됩니다.


6. 막판 대역전극 - 레이건 



1980년 선거에서 로널드 레이건은 지미 카터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50개 주 중에 44개 주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전체 국민 투표 결과에서도 지미 카터보다 10% 이상의 득표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선거 직전까지도 여론 조사 결과는 현직의 지미 카터가 8%이상 앞섰고, 등록 유권자의 지지율에서도 3% 앞서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경우 시민권자가 아닌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여론 조사 중에서도 투표권을 가진 선거인 명부에서 추출한 대상자들의 여론 조사도 실시합니다.)


11월 선거를 앞두고 불리한 상황에 직면한 레이건은 10월 28일 마지막 티비 토론에서 강렬한 어필을 하였고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결국 마지막 여론조사 결과까지도 지고 있던 레이건은 극적인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7. 닉슨을 꺾은 케네디



3선 출마 금지 조항으로 인해 더 이상 대통령직을 맡을 수 없는 재선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후임으로는 리차드 닉슨 부통령이 유력하였습니다. 

그러나 닉슨의 상대는 20세기 정치인 중 가장 젊고 유능한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존 F 케네디 상원의원 이었습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최초로 도입된 티비 토론회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인 케네디는 닉슨을 가까스로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양 측 후보의 득표수는 겨우 0.2%인 113,000표 이내의 근소한 차이로 닉슨은 더 많은 주에서 승리를 거뒀지만 확보한 선거인단 수는 케네디보다 적었습니다.


케네디는 역사상 가장 젊은 미국 대통령이자 20세기의 가장 근소한 차이의 승리를 거둔 대통령으로 기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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