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응형

와일드 웨스트!!


서부시대는 보안관과 무법자들의 총싸움을 떠올리게 합니다.

실제로 서부시대의 많은 총잡이들은 열차 강도, 은행 강도 등 범죄에 가담하는 부류들이 많았습니다.

반면에 그들의 능력을 무법천지 시대에 정의를 수호(?)하는 데에 사용한 경우도 있었죠.


보안관이나 지역 치안담당자 그리고 무법자가 종이 한 장 차이였습니다.

총놀림이 뛰어난 보안관은 그 스스로가 법의 수호자이자 집행자이면서 동시에 그가 곧 법이 되는 일종의 무법자이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유명한 와일드 웨스트의 총잡이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빌리 더 키드 Billy the Kid


빌리 더 키드


키드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전설적인 총잡이 빌리 더 키드는 평생에 걸쳐 26명을 죽였다고 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사망시 나이는 고작 21세였네요.

그렇기 때문에 그가 실제로 해친 사람은 10명 이내였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런 상반된 정보들은 그의 별명과 천부적인 총기술에 대한 얘기들과 어우러져 흥미로운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빌리 더 키드는 1859년 11월 23일 뉴욕에서 태어나 1873년 어머니와 함께 뉴멕시코에 정착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가축 도둑질로 범죄에 처음 입문하게 되었고 18세이던 1877년 영국 목축업자와 그의 가축들을 보호하는 것을 주 임무로 존 턴스탈에게 고용되었습니다.

빌리는 이미 빠른 총놀림으로 유명하였고 고용주인 존과는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사이였기에 존 턴스탈이 피살되자 그의 복수를 다짐하게 됩니다.


빌리는 피스메이커라 불리는 44구경 총을 주로 사용하였고 "링컨 카운티의 전쟁"에 연루되어 더욱 악명이 높아졌습니다.

이후 추가로 여러 차례의 유혈 사태를 일으킨 끝에 1881년 7월 14일 보안관 팻 개럿의 총에 맞아 사망하게 됩니다. 


제임스 "킬링 짐" 밀러 James "Killin' Jim" Miller


제임스 킬링 짐 밀러


제임스 킬링 짐 밀러는 1866년 10월 25일 아칸사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가 아직 아기일 때 가족 모두가 텍사스로 이주하게 됩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조부모에게 양육되었지만 곧이어 조부모도 살해당하고 고아가 된 제임스 킬링 짐 밀러는 고작 8세때 첫 번째 범죄로 체포됩니다.

기소는 되지 않고 풀려난 밀러는 이후 누이 부부와 같이 살게 되지만 다툼 끝에 매형의 머리를 엽총으로 쏩니다.

그로 인해 살인죄로 기소되었지만 재판에서 다시 풀려났다고 하네요.


짐은 이후 불린저에서 벌어진 다른 총격 사건에 연루되어 조 타운젠드라는 법관앞에 서게 됩니다.

이 사건 후에 짐 여행과 술집 운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페이커스 지역의 보안관으로서 전향을 하게 되지만 보안책임자인 조지 A와의 불화가 깊어졌고 총격을 당하지만 다행히도 셔츠 안에 껴 입은 강철판으로 인해 목숨을 부지합니다.


킬링 짐은 암살자뿐만 아니라 텍사스 국경수비대로도 활약합니다만 1909년 4월 19일 전임 보안관 살해 혐의로 교수형을 당하게 됩니다.


제임스 킬링 짐 밀러는 51명을 죽였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12명이었다고도 합니다.



존 웨슬리 하딘 John Wesley Hardin


존 웨슬리 하딘


신기에 가까운 그의 빠른 총기술에 대해 당시 신문 기사는 존 웨슬리 하딘은 개구리가 파리를 집어 삼키는 속도보다 더 빨리 권총 6발을 쏜다고 했습니다.


텍사스 레인저 출신의 제임스 B 질렛 역시 존 웨슬리 하딘의 총솜씨에 대해 말하길 "스핀, 속도, 재장전, 발사 등 마법같은 속도와 정확성을 가졌다."고 하고요,


달리는 말 위에서도 정확하게 쏘고 재장전하고 심지어는 나뭇가지 사이의 작은 틈으로도 정확히 총을 쏘았다고도 합니다.


이 정도면 정말 서부 영화의 주인공 솜씨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존 웨슬리 하딘은 이렇게 뛰어난 총솜씨를 주인공이 아닌 악당의 역할로 사용했습니다. 1853년 5월 26일 텍사스에서 태어난 존 웨슬리 하딘은 고작 15세 때인 1868년 첫 번째 살인을 시작으로 일생 동안 27명을 살해했다고 합니다.


인과응보인지 자업자득인지 42세가 되던 1895년 8월 19일 경찰이자 무법자인 존 셀먼에게 총격을 받아 사망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웨슬리 Clemons라고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10대 시절의 웨슬리 하딘은 "와일드 빌 히콕"이라는 총잡이에 관한 기사를 보고 그에게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이건 마치 우리 10대들이 조폭 영화를 보고 조폭을 동경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요?


댄 보건 Dan Bogan


댄 보건


1860년 앨라바마에서 태어난 댄 보건은 텍사스에서 성장하였습니다.

어린 나이부터 카우보이 생활을 시작한 댄 보건은 급한 성격의 소유자로 많은 사건을 일으켜 트러블 메이커로 악명을 떨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현상금이 붙은 신세로 텍사스를 떠나 와이오밍으로 옮겨갔습니다.


1886년까지 댄 보건은 3명을 살해했다고 알려져있는데 여기서 멈추지 않고 1887년 1월 15일에는 텍사스 국경수비대 Charles S Gunn을 살해하였습니다. 

당시 총격전에서 어깨에 총상을 입은 댄 보건은 거친 눈보라를 뚫고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지만 부상 심해져서 당국에 자수하게 됩니다.


그러나 1897년 10월 탈옥에 성공하여 아르헨티나로 도주하는데 성공합니다.

유명한 탐정이었던 Charlie Siringo등이 댄 보건의 뒤를 쫓았지만 흔적 하나 남기지 않은 댄 보건을 잡을 수는 없었죠.


작가 Robert K. DeArment는 댄 보건을 가장 과소평가된 서부 총잡이라 일컬었습니다.



윌리엄 "와일드 빌" 롱리 William "Wild Bill" Longley


윌리엄 와일드 빌 롱리


와일드 빌 롱리로 알려진 윌리엄 프레스턴 롱리는 서부시대의 가장 악명높은 총잡이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그는 아주 흉폭했고 악랄하여 사소한 이유로도 총질을 서슴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요즘 말로 하면 아주 사이코 패스였답니다.

윌리엄 와일드 빌 롱리 본인의 말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건방진 흑인은 망설임 없이 죽여도 된다고 믿었고 17세때 첫 살인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1851년 10월 6일 텍사스의 오스틴 카운티에서 태어난 윌리엄 와일드 빌 롱리는 Lee county 근처의 농장에서 자라며 그 곳에서 총기술을 배웠습니다.

와일드 빌은 44구경 리볼버 두 정을 들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엽총도 즐겨 썼다고 합니다.


1878년 10월 11일 와일드 빌은 사형 집행을 받으면서 8명을 살해했다고 하였지만 그 이전에는 32명을 죽였다고도 했습니다.

8명이든 32명이든 CBS뉴스는 와일드 빌을 가장 빠른 쌍권총잡이라 칭했을 만큼 악명높고 유명한 총잡이였습니다.


하비 "키드 커리" 로건 Harvey "Kid Curry" Logan


하비 키드 커리 로건


1867년 아이오와주 타마 카운티에서 태어난 키드커리라고 더 알려진 하비로건은 어릴 때부터 절도로 체포되기도 했었고 1894년에는 몬태나주에서 광산업자이자 집행관(보안관)인 파웰 론드스키가 자신의 딸을 폭행한 혐의로 키드 커리를 고소하였고 경찰에 끌려가서 흠씬 두들겨 맞은 후 술집에서 론드스키를 총으로 쏴 죽였습니다.


도주하던 로건은 또 다른 범죄자 블랙 잭 케첨 Black Jack Ketchum과 갱단을 조직했다가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한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로 더 유명한 부치 캐시디 Butch Cassidy와 선댄스 키드 Sundance Kid의 조직에 합류하게 됩니다.


부치캐시디와 선댄스키드 그리고 키드 커리


위 사진에서 맨 왼쪽이 선댄스키드, 맨 우측은 부치캐시디 왼쪽에서 네 번째 서 있는 사람 중 오른 편의 콧수염 남자가 키드 커리 입니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키드 커리는 가장 빠른 총잡이로 묘사되기도 하는 키드 커리는 실제로 사우스 다코다, 와이오밍, 뉴멕시코, 콜로라도 등지에서 부치, 선댄스 키드와 함께 여러 강도 행각에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두 번이나 탈옥을 하고 총 9명을 살해한 키드 커리는 1904년 6월 17일 콜로라도에서 총격전 중 총상을 입고 자살을 함으로써 생을 마감합니다.



루크 쇼트 Luke Short


루크 쇼트


루크 쇼트는 1854년 미시시피에서 태어났지만 텍사스에서 자랐습니다.

10대에 집을 떠나 잠깐 동안은 카우보이로 일을 하면서 주류 불법 거래와 프로겜블러의 길로 접어 들게 됩니다. 

후에는 여러 술집들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뛰어난 총기술이 더 알려졌습니다. 특히 Dodge City War라고 부르는 유명한 싸움으로 더 명성을 얻게 됩니다.


루크 쇼트가 다지 시티의 Long Branch Saloon이라는 술집을 매입하자 이를 달갑지 않게 여긴 당국에서는 그를 없애려고 했습니다.

결국 싸움을 피할 수 없게 되자 쇼트는 법 집행관(보안관) 뱃 마스터슨 Bat Masterson을 통해 유명한 와이어트 업 Wyatt Earp에게 도움을 청하고 이에 응한 와이어트 업은 무리를 이끌고 다지 시티에 도착합니다.


와이어트 업이 도착하자 무력 충돌을 우려한 당국은 서둘러 쇼트에게 다지 시티의 Long Branch Saloon의 운영을 허락하였고 그렇게 한 발의 총격도 없이 소동은 해결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쇼트는 짐 코트라이트 Jim Courtright 와의 결투로도 유명해졌습니다. 1887년 2월 8일에 벌어진 이 날의 결투에서 쇼트는 빠른 총놀림으로 코트라이트를 해치웠습니다.


달라스 스타우든마이어 Dallas Stoudenmire


달라스 스타우든마이어


달라스 스타우든마이어는 1845년 12월 11일 알라바마 주 아버포일에서 태어났습니다.

15세 때는 군대에 지원했다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기도 했지만 기어이 남군으로 남북전쟁에 참전하였습니다.

이후에는 텍사스 국경수비대로 3년 이상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정확한 쌍권총 실력으로 유명했던 스타우든마이어는 불같은 성격과 특히 술에 취했을 때 더 난폭해지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1881년 4월에는 무법지대로 악명높은 텍사스의 엘파소 지역 치안 담당자가 되었습니다.

서부시대에는 범법자와 보안관(marshal, sheriff)이 종이 한 장 차이였습니다.

근무 3일째에 "5초에 4명 사살"Four dead in Five seconds 이라는 유명한 총격전으로 3명을 죽입니다.

이듬해 2월에는 7명을 더 해치웠습니다.


스타우든마이어가 닥치는 대로 무법자들을 해치운 까닭에 엘 파소의 범죄율은 엄청나게 감소하였고 그의 명성은 더욱 더 높아졌습니다.

물론 그의 명성이 높아짐에 따라 수 많은 적들이 생기기도 했지요.

결국 그의 나이 36세가 되는 1882년 9월 18일 매닝 형제들과의 갈등에서 촉발된 총격전에서 사망하였습니다.



윌리엄 "컬리 빌" 브루커스 William "Curly Bill" Brocius


윌리엄 컬리 빌


1845년에 태어난 윌리엄 브로커스는 애리조나의 가장 유명한 무법자로 "컬리 빌" 브로커스로 불립니다.

그는 1880년 10월 27일 툼스톤에서의 집행관 프레드 화이트 Fred White 와의 우발적인 총격전과 1881년 3월 8일 딕 로이드라는 카우보이를 죽이는 등 여러 총싸움에 관여하기도 하고 말려들기도 했습니다.


또 브루커스는 1882년 3월 18일 와이어트 어프의 형 모건 어프 Morgan Earp 살해사건에 관련되었을 거라고 추정되는데 이로 미루어 그의 총솜씨가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의 얘기 중에는 브루커스는 손가락 사이의 동전을 정확히 맞히거나 촛불을 총으로 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모건 어프를 살해함으로써(사실이든 추측이든) 6일 뒤인 1882년 3월 24일 애리조나의 아이언 스프링스에서 와이어트 어프에게 죽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영화 툼스톤 등 와이어트 어프를 소재로 한 영화에 자주 나오는 스토리이기도 합니다. 


제임스 "와일드 빌" 히콕 James "Wild Bill" Hickok


와일드 빌 히콕


전설적인 서부 총잡이 제임스 "와일드 빌" 히콕은 1837년 5월 27일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와이어트 어프와 더불어 영화화도 많이 된 인물이죠.

어린 시절부터 총솜씨가 뛰어났다고 전해지는 와일드 빌은 18세이던 1855년 싸움 끝에 자신이 상대를 살해한 걸로 오해하고 서부로 향하게 됩니다.


역마차 마부생활을 거쳐 캔자스와 네브라스카에서 보안관 활동을 하고 남북전쟁 때에는 북군 소속으로 참전하였습니다. 일설에는 스파이로 활동했다고도 합니다.

와일드 빌이라는 별명 역시 남북전쟁 중에 불은 이름인데요,

1865년 와일드 빌은 미주리의 스프링필드에서 데이빗 터트 David Tutt 와의 공개 결투 때 75야드(68.58미터) 밖에서 단 한 발로 상대를 해치움으로써 당시 유명 잡지인 하퍼스(紙)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도박판의 돈 문제로 촉발되었다는 이 결투 사건으로 인해 와일드 빌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 졌습니다.


와일드 빌 히콕2


1871년 4월 15일 텍사스의 애빌린에서 보안관이 되었지만 같은 해 12월 동료 보안관(보좌관) 살해 사건에 대한 의심을 받으며 해임되었습니다. 

몇 년간 버팔로 빌 코디의 와일드 웨스트 쇼를 따라 다니며 도박을 일삼으며 수 차례 사고로 체포되기도 하였습니다.


1876년 8월 2일 Dakota Saloon에서 포커를 하던 중 이전의 모욕을 앙갚음 하기 위한 잭 맥칼 Jack McCall이 뒤에서 쏜 총을 머리에 맞고 숨을 거둡니다.


유명세에 비해 마지막이 초라하기 짝이 없는데요, 일생 동안 그가 죽인 사람이 1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포커 실력도 뛰어났는지 그의 일리노이 생가는 기념관이 되었고 1979년에는 포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고 합니다.


와이어트 어프 Wyatt Earp


와이어트 어프


와이어트 어프는 애리조나주 툼스톤의 보안관이자 집행관 그리고 도박사로 유명합니다.

그는 치안 담당자, 광부, 도박, 술집 운영 그리고 부동산 거래 등을 하면서 서부를 방랑했고 평생을 보냈습니다.


많은 영화에서 보안관으로 정의를 지키는 인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그 자신 스스로가 서부 시대의 엄청난 무법자였습니다. 


와이어트 어프는 신흥 도시 중 위치타, 다지 그리고 툼스톤 등 주로 폭력이 난무하는 무법지대를 다니며 보안관 직책을 수행하며 당시 1800년대에 벌어졌던 대부분의 전설적인 총싸움에 개입하였습니다.


영화로 더 유명한 1881년 10월 26일 애리조나 툼스톤에서 벌어진 유명한 "OK 목장의 결투"는 "The Cowboys"(Ike & Billy Clanton, Tom & Frank McLaury) 와 보안관 측의 와이어트 어프 3형제와 닥 할리데이(Wyatt, Virgil & Morgan Earp 와 Doc Holiday)간의 약 30초에 이르는 총격전 이야기 입니다. 


싸움의 결과는 카우보이 측은 Ike를 제외하고 3명이 사망하고 와이어트 어프 3형제는 부상 그리고 닥 할리데이는 가볍게 스치는 정도의 부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이 싸움으로 와이어트 어프는 가장 뛰어난 서부의 총잡이로 알려졌고 많은 영화에서 영웅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반응형